춘추시대, 진(晉)나라에 ‘위무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아끼는 첩이 있었으나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위무자가 병이 들어 눕자 본처의 아들인 위과에게 말했다.
“첩이 아직 젊으니 내가 죽거든 다른 곳에 시집 보내도록 해라.”
그런데 병이 깊어지자 말을 바꾸었다.
“나를 묻을 때 첩도 함께 묻어라.”
※ 당시 귀인(貴人)이 죽으면 그의 첩들을 순장(殉葬)하는 관습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는 난감했다.
처음에는 시집보내라고 했다가 다시 자신과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고민하던 그는 결국 첩을 살려 주어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다.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깊어지면 생각이 흐려지기 마련이오. 정신이 맑을 때 아버지가 처음 남긴 유언을 따르는게 옳다고 생각하오.”
그 뒤,
진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침략당하자 위과는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터로 향했다.
양측이 싸움을 벌일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위과의 군대는 적군의 공격에 몰려 위태로운 처지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잡아매어
온 들판에 매듭을 만들어 놓았다.
적군들은 말을 타고 공격해 오다 거기에 걸려 넘어져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그 틈을 타, 공격하자 위과는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적의 용맹한 장수 두회도 사로잡았다.
위과는 그 노인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친정아버지요. 그대가 그대 아버지의 첫 번째 유언대로 내 딸을 살려 주어, 그 은혜에 보답했다오.”
이 이야기에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이 유래했는데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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