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역사/좋은 글, 감동 글

그리스 20년 만에 재정파탄, 한국은 15년 후 위험

승명 2015. 7. 14. 23:07

 

그리스 20년 만에 재정파탄, 한국은 15년 후 위험

권혁철 | 2015-06-10 | 조회수: 785

cfe_policy_15-37.pdf

 

그리스를 못 보는가? 안 보는가?

 

채 며칠도 못 간 것 같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합의했다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장면이 TV화면과 신문을 장식했던 것이. 곧 이어 터져 나온 어이없는 소식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취지와 성과를 무색케 만들었고, 포퓰리즘의 극한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혹평이 쏟아져 나왔다. 바로  '국민연금 명목소득소득대체율 50%로 상향 조정 연계’ 여야 합의라는 발표였다.

 

여야는 2016년부터 공무원이 내는 돈은 5년에 걸쳐 늘리고 퇴직 후 받는 연금은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공무원연금 기여율은 7%에서 9%로 높이고, 지급률은 1.9%에서 1.7%로 낮추었다. 이러한 개혁으로 70년간 330조 원의 절약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림 1 참조). 그나마 한 푼이라도 국민의 부담을 줄이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만 보았을 경우 그렇다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숨어 있는 빙산의 규모가 너무 크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원래 앞으로 70년간 1,980조 원이었던 정부의 재정지원 부담이 330조 원 줄어들은 것에 불과하며, 나머지 1,650조 원은 매년 평균 23조 원씩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만 한다. 용두사미 개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공무원연금 개혁과 연계해서 40%로 낮추기로 했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기로 한 것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인상하면 재정 추가 부담액이 2050년 664조 원, 그리고 2083년에는 무려 1,669조 원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또 현재와 같은 재정 상태라면 기금의 고갈 시점도 2060년에서 2056년으로 4년 정도 앞당겨지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간단히 말해 공무원연금에 대한 국민부담 333조 원을 줄이는 개혁을 하면서 그 5배에 달하는 1,669조 원의 부담을 늘리는 개악을 '개혁’과 '여야 합의’라는 명분으로 일거에 해치운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용두사미로 만들어 놓고, 그것과는 무관한 국민연금에 선을 댄 것도 모자라 개혁 아닌 개악, 그것도 엄청난 개악을 해버린 것이다.

 

 

 

<그림 1>

 

국민연금 수령액을 올리고자 한다면 보험료율을 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선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세금으로 충당해야만 한다. 그런데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도 이런 문제는 '나 몰라라’하고는 국민에게 '아부’할 수 있는 내용만을 은근슬쩍 연계시킨 것이다. 하지만, 은근슬쩍 연계시켜 정치꾼들이 '업적 자랑’하면서 넘어갈 일이 아닌 정도로 그 규모가 너무나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련의 이른바 '퍼주기’ 사태들은 도대체 정치가 대한민국을 어느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에 앞서 이런 '퍼주기’ 경쟁을 벌이다 국가파산에 직면했던 그리스와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우를 보면서도 여전히 그들과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은 더하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는 국가파산 상황이 현재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그 누구도 그로부터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공자(孔子)는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三人行 必有我師)고 했는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그리스 파산의 사태를 눈으로 보면서도 배우고자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국가부채 등이 그리스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도 최근 포퓰리즘의 득세와 이로 인한 보편적 복지의 확대로 복지지출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고, 이는 이미 국가재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에는 이미 보육재정의 부족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다툼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묻지마 복지’로 인한 위험의 징후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국민연금을 개악함으로써 위험은 한층 그 수위가 높아지게 되었다. 위기는 먼 곳에 있지 않고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그리스의 사태가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리스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의 상태를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에 대한 일반현황

 

1974년에 오랜 군부독재가 종식되면서 신민당과 사회당의 양당체제가 확립되었다. 신민당은 중도우파, 사회당은 중도좌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4년에는 신민당이 집권에 성공했고, 이후 사회당과 정권을 주고받으며 15년 간 집권했다. 사회당은 1981년 정권교체에 성공해 처음 집권했고, 이후 정부를 구성한 기간은 22년이다. 2012년 총선에서 과반을 넘는데 실패한 두 당은 신민당 주도의 연립정부를 구성해 오다가 이번 총선에서 시리자에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그리스의 2010년 기준 1인당 명목 GDP는 28,154 달러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수준이다. 2010년 총인구는 1,100만 명, 그 중 생산인구는 500만 명으로 고용률이 낮으며, 임금근로자의 비율은 63.6%이다. 65세 이상 노인구성비는 2010년 18.3%이며, 2050년에는 32.5%로 우리나라 다음으로 고령화 속도가 빠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스는 1981년 EU에 1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2001년 유로존에도 가입하였다. 2004년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2000년대 후반 심각한 재정 불안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2008년 위기 이후 그리스에서 임금은 40% 하락했고, 연금은 45% 삭감되었으며, GDP는 25%나 감소했다. 실업률은 7.3%에서 26%로 급등했고, 청년실업률은 무려 60%가 넘는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129%에서 176%로 치솟았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안정화 대책에 반대하는 과격한 시위와 정치 불안정으로 유럽은 물론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했다.

 

 

이미 두 차례 구제금융 받고도 정신 못 차리는 그리스

 

그리스는 이미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2,400억 유로(약 292조 원)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디폴트 위기를 넘긴 바 있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재정이 파탄 난 그리스는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75%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 등이 구제금융을 하면서 방만한 공공부문과 과도한 복지의 개혁, 노동시장 유연화 등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또한 구조개혁만이 그리스가 정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한 차례 겪어보았듯이 이 과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이 고통의 과정을 이겨내야만 정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와 달리 그리스 국민들은 고통의 분담 대신 당장의 달콤함과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택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긴축재정과 복지축소 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매일매일 각종 이권단체들의 격렬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채권기관으로부터의 재정정상화 요구를 '불쾌한 내정간섭’ '치욕’이라 하면서 민족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포퓰리즘 정치꾼들은 바로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하여 득표와 권력획득을 기도한다. 이번 총선에서 정권을 획득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 역시 구제금융의 대가로 요구되는 긴축재정을 거부하고 유럽연합 등과의 채무협상을 다시 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총선 승리가 확실시 되자 시리자 대표인 치프라스는 “그리스는 치욕과 고통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는 연설을 하면서 구제금융 이행조건인 긴축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의 감정을 건드리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적인 발언이다. 영국의 BBC는 “유럽 각국에서도 포퓰리스트 정당의 대약진이 예상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민주주의의 패배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우려하는 바대로, 우리는 이번 그리스 선거에서도 민주주의의 취약점을 목격하게 된다. “민주주의 하에서는...표를 얻어 권력을 획득해야만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국가의 장래, 경제에 미치는 영향, 기업경쟁력과 일자리 창출, 궁극적인 효과 등에는 관심이 없다. 당장 내일 모레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정치인에게는 당장 유권자들의 눈앞에 펼쳐 보여 줄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그것이 중장기적으로 자기파괴적이고 국가의 장래와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 분명히 예상되는 것일지라도 그렇다.....정치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로지 당장의 선물을 주겠다는 달콤한 눈속임을 통한 '유권자 매수’이고, 유권자들에게는 그 달콤한 눈속임의 선물을 대가로 자신의 표를 팔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뿐이다.”

 

포퓰리스트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퍼주기 경쟁’, '공짜 경쟁’, 그리고 급기야 감당할 수도 없는 '묻지마 복지’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리스는 그 전형적인 사례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 포퓰리즘의 등장과 확산

 

그리스는 1929년부터 1980년까지 50여 년간 쿠데타와 독재, 내전 등 불안정한 정치상황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1인당 실질국민소득이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했고, 평균 경제성장률도 일본의 4.9%보다 높은 5.2%에 달할 정도로 부유한 나라였다. 1981년 EU 회원국으로 가입할 당시 그리스 국가부채는 GDP의 25%, 재정적자는 3%에 불과했고, 실업률도 2~3% 수준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수개월 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이끈 사회당(PASOK)이 집권하면서 돌변하기 시작한다.

 

1981년 사회당 집권과 함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총리가 되면서 그리스의 포퓰리즘이 시작됐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총리에 취임하기 전까지 그리스 사회당을 창당하고 당수를 지냈으며, 1981년부터 1989년까지 8년 간, 그리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3년 간 두 차례 그리스의 총리를 지내면서 그리스 포퓰리즘의 토대를 닦았다.

 

1981년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나온 그의 일성(一聲)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였다. 이에 따라 평균임금과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고, 의료보험을 전 계층으로 확대했다. 주요 기업들을 국유화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추진해 나갔다. 의료는 연금과 연계하여 무상으로 실시된다. 즉 연금에 가입하게 되면 자동으로 무상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기본적 진료는 무료이고, 약값은 10% 정도 본인부담이며, 큰 병에 걸렸을 경우에 소액의 비용만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교육은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다. 물론 -후술하는 것처럼-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명목상이고, 실질 상황은 전혀 다르다.

 

포퓰리즘은 이른 바 '연금천국’을 만들었다. 그리스 국민은 퇴직을 하면 자신이 받았던 최고연봉의 95%를 연금으로 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은 59%이다. 근로자는 연금의 16%만을 부담하고 고용주가 28%, 그리고 정부가 나머지 56%를 담당한다. 그리스 전체 인구의 23%인 260만 명이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고, 국내총생산의 12%를 연금지불을 위해 사용한다. 오는 2040년에는 이 비율이 21%를 넘기고, 2060년에는 24%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힘겹게 일을 하지 않아도 많은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퇴직하고 싶어한다. 조기퇴직에 따른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완전연금이 지급되는 연금지급 개시연령이 57세(2010년 59세)로 낮기 때문에 연금수급시점 이후의 평균여명도 그리스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길 수 밖에 없다. 그리스는 평균여명이 24년으로, OECD 평균인 18.5년에 비해 4~5년이나 길다. 일을 하고 연금을 부담하는 기간은 짧은 반면 조기퇴직과 높은 소득대체율, 긴 평균여명은 차세대에 전가되는 연금부담액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이른바 연금을 둘러싼 세대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경기침체나 인구감소 등으로 다음 세대가 부담하기 어렵게 될 경우 재정위기로 몰아가는 구조적인 원인이 된다.<표 참조>

 

<표: 주요 국가의 연금관련 지표 비교(남성, 평균소득자 기준, 2010년)

 

 

 

연금에서 포퓰리즘은 극에 달했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마치 선물 주듯이 연금을 하나씩 추가시켰고, 특혜를 하나씩 추가시켰다. 사회보험은 수백 개에 달했었고, 최근에는 13개로 분류/통합되었지만 특권과 특혜, 불평등은 여전하다. 예를 들어 위험직군으로 분류되는 근로자들의 경우에는 아무런 손해 없이 조기퇴직이 가능하다. 그리스에서는 580가지 직업이 위험직으로 분류되어 여자는 50세, 남자는 55세에 조기 은퇴할 수 있다. 조기은퇴에 해당되는 직업 중에는 탄광과 폭탄 처리처럼 실제 위함한 직업도 있다. 하지만, 라디오나 TV아나운서들, 악기를 다루는 음악인들도 위험직으로 분류되어 있다. 아나운서들의 경우에는 마이크에 있는 박테리아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유고, 음악인의 경우에는 폐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또 미용사들도 위험직으로 분류되어 50세 은퇴 및 완전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염색약을 비롯해 여러 가지 화학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 위험직 지정의 이유이다.

 

노동조합의 힘을 빌리고자 정치인들이 노동조합과 결탁하였고, 이 과정에서 직종에 따라 노조가 해당 직군 종사자 수를 제한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또한 1937년 이래 노조 간부들에게는 '특별 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구제금융 이후 정부가 실업률 해소 방안으로 업종 진입장벽을 없애기로 하자 택시노조 등 노조들이 파업 및 폭력시위를 벌이면서 개혁에 반대했다. 정치인들이 키운 노조의 힘은 막강하여, 개혁이 있을 때마다 개혁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등장한다.

 

한편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최악으로 평가받는다. 엄격한 노동규제로 인해 기업 경영환경이 아무리 나빠져도 해고를 못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게으른 노동자도 해고하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리스의 기업경쟁력은 바닥을 면치 못한다. 영국 컨설팅업체인 그랜트손톤이 36개국, 7,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0년 국제 비즈니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그리스의 규제 수준은 유럽연합 평균치인 34%보다 훨씬 높은 57%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영세기업만 양산될 뿐, 성장하여 대기업으로 크는 기업이 나올 수 없다. 그리스 제조업체의 약 3분의 1이 고용인 10인 이하의 영세업체다. 독일은 4.3%, 덴마크 6%로 10% 미만이다. 영세업체의 비중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영세성은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쳐 전체 산업의 생산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무분별한 복지정책과 강력한 규제로 인한 낮은 기업경쟁력의 결과는 당연히 높은 실업률이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확대했다. 관광 이외에 변변한 산업기반이 없는데다가 경직된 노동시장과 각종 규제로 인해 민간의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늘지 않자, 정부는 정부재정으로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고, 이렇게 늘린 공무원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세력으로 활용했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면 새 정권은 자신들의 친인척과 지지세력들을 위해 새로운 공무원 일자리를 만들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그리스에선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존 인력을 줄이지 않은 채 주요 정치 지도자 측근과 이들의 가족과 친척들 수천 명을 정부 관료로 새로 채용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인구 1,100만 명에 공무원이 98만 명이나 되고,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 간 공무원 수는 5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들의 임금 역시 해마다 5~7% 가량 증가해 왔다. 이들은 업무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거나 쇼핑을 해도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제재를 받지 않았으며, 대부분 오후 2시면 퇴근하여 부업에 종사하고, 이렇게 부업으로 번 돈은 관행적으로 신고도 하지 않는다.

 

공공부문의 일자리는 대부분 필요도 없는 일자리이며, 공공부문 종사자의 25%가 과잉인력으로 분류될 정도다. 그만큼 공공부문의 나태와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상태다. 일례로 그리스에는 이미 30년 전에 말라버린 코파이스 호수의 물을 관리하기 위해 관청이 설립됐고, 거기에 속한 공무원 30명에게 여전히 임금을 지급한다. 또 그리스 국립철도는 매년 1억 유로의 수입을 올리는 데 반해 직원 임금으로는 4억 유로를 지출한다.

 

1980년 GDP의 29%였던 정부지출은 2009년 53.1%에 달하고, 그 중 75%가 공공부문 임금과 복지지출로 나간다. 하지만 복지 수준은 오히려 열악하고 이에 따른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사회에 만연된 부패는 '파케라키(작은 돈 봉투를 의미)'라 불리는 뇌물로 상징된다. 공무원들의 부패는 앞서 언급했듯이 각종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야 한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12년 발표에 따르면 그리스 국민의 7.4%가 지난 1년 동안 부패를 신고했으며, 공공부문에 상납한 뇌물액이 약 5억5,400만 유로(약 8,3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돈 봉투가 오가는 행위는 그리스의 관행으로 굳어지게 됐고, 이 부패시스템은 사회전반에 파고들어 일반 가정에까지 만연됐다. 법률상 모든 수술이 무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정부가 의료 재정 지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민들은 수술비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유기업원(현 자유경제원)에서 초청했던 그리스의 하치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일례로 무릎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1,500유로를 내야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10명이 함께 쓰는 열악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중/상류층은 국공립병원 대신 사립병원을 이용하는데, 건강진단 한 번 받는데 2,300유로(약 350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의료는 물론 교육에서도 '가욋돈 찔러주기’는 일상이 되었다. 학생들은 부실한 공교육의 보충을 위해 교사에게 별도로 돈을 내고 과외 수업을 받고, 교사들은 또 노골적으로 학생들에게 방과 후 돈을 내고 과외를 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의 증가와 함께 대두될 수밖에 없는 문제는 공공부문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는 것이다. 1990년까지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사업의 자산은 75%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는 이 비중을 50% 수준까지 감축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비중이 여전히 높고, 아직도 민간부문이 많은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OECD는 판단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집권 초기 GDP의 25% 수준이던 국가부채는 집권 말기가 되면 80% 이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런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에 열광했다. 이같은 포퓰리즘 정책과 포퓰리즘 정책에 열광한 국민들의 지지는 사회당 8년 집권으로 이어졌다. 그리스 사회당은 집권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그리스 정당들과 정치인들은 포퓰리즘의 득표 위력을 실감했고, 경쟁적으로 복지포퓰리즘에 몰두했다. 예를 들어 2004년 총선 당시 신민당의 대표 카라만리스는 개혁을 약속했지만 총리가 된 뒤 이를 저버렸다. 카라만리스 정부는 또 2009년 총선 직전에는 무려 1만개가 넘는 공직을 만들어내 친척들과 측근들에게 분배했다. 결국 그가 집권하는 동안 그리스 정부부채는 두 배로 늘었다.

 

복지지출과 공무원 임금 등에 돈을 펑펑 써댔지만 그리스의 조세부담률은 2011년 기준 20.4%로 한국의 24.3%보다도 낮다. 이는 세금을 걷는 것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세금 인상을 계속 미룬 탓이다. 이 역시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모습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10년 그리스 정부는 국민 1인당 평균 세금납부액 8,300 유로보다 1.3배가 많은 1만600 유로를 각종 복지비용으로 지출했다. 국민 1인당 2,300 유로씩의 적자를 보고 있었던 셈이며, 재정적자가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1980년 GDP의 25% 수준이던 국가부채는 2010년 초가 되면 140%에 이르고, 현재는 170%를 넘겼다. 실업률은 현재 25%를 웃돌고, 여의사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매춘에 뛰어들고 적지 않은 시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그리스 현대 정치사의 거목으로 평가받았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이제 그리스를 '유럽의 천덕꾸러기’로 전락시킨 원흉이 된 것이다.

 

 

그리스, 포퓰리즘 20년 만에 국가부채 위기로 몰리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에 대한 재평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는 처음에 위대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에는 그리스를 망친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포퓰리즘에 솔깃하는 정치인들은 이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단기간의 인기에 영합하다가 역사에서 나라를 망친 인물로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고 준비했던 훌륭한 정치인인가를. 그들은 종종 역사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진정 역사를 두려워한다면, 복지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야 할 것이다.

 

1981년 시작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포퓰리즘 정치가 그리스를 30년 만에 국가부채 위기로까지 내몰았다. 기간은 30년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상 국가파탄은 20년 만에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10년은 통계조작을 통한 유로존 가입의 혜택으로 재정파탄을 유예받았던 것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한 것은 2001년이다.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수렴기준’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이 '경제수렴기준’ 중 재정과 관련하여서는 정부의 재정적자는 GDP의 3% 이내, 정부 부채는 GDP의 60% 이내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리스는 1999년 유로화가 도입될 당시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가입하지 못했다가 2001에 가서야 가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좌파 정부가 '회계조작’을 감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04년 신민당으로 정권이 넘어오자 재무장관은 “1999년 이전 3년 동안 재정적자가 3% 이내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며 이전 정권을 맹비난하면서 회계조작 실상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사실상 유로존에 가입할 자격이 없을 정도로 재정이 이미 파탄상태였던 것이다.

 

회계조작을 통한 유로존 가입은 그리스 포퓰리스트들의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 재정적자가 엄청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가입 덕택에 금리가 대폭 하락하여 가장 믿을 수 있다는 독일 금리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그리스는 그렇게 낮아진 금리로 국채를 발행해 정부지출을 더욱 늘렸고, 그 대부분은 '무상 복지’에 지출했다. 유로존 가입으로 약 10년 간 남의 돈으로 이른바 '그리스 파티’를 벌인 것이다. 이 파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나타나고 세계 금리가 오르면서 막을 내린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스 재정 파탄은 2010년이 아니라, 실제로는 회계조작이 없었다면 유로존 가입을 거부당했을 2000년대 초반에 이미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포퓰리즘 정책 20여 년 만에 재정파탄에 이른 것이다.

 

 

대한민국, 복지포퓰리즘의 시작과 전망

 

우리나라에서 복지포퓰리즘 정치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라고 할 수 있을까.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실현, 그리고 10년 후 1999년 국민연금이 농어촌과 도시지역 모두를 망라하면서 전국민 연금시대를 연 시기부터를 포퓰리즘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그런데, 서유럽 복지국가를 비롯한 그리스에서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제도가 실시된 것은 복지포퓰리즘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의 일이라고 본다면, 전국민 의료보험과 전국민 국민연금 시대를 복지포퓰리즘의 시작이라고 보기는 무리다.

 

필자의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복지포퓰리즘이 시작된 것은 2010년 교육감 선거 때이다. 이른바 '진보 진영’의 교육감들이 전면적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서 톡톡히 재미를 본 당시 민주당 등 야권은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등 소위 '3무+1반’을 내세우며 복지포퓰리즘에 기름을 끼얹었고, 이에 질세라 여당 스스로가 '반값등록금’ 논쟁을 재점화시켜 복지포퓰리즘의 불길에 태풍을 불러들였다. 이어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당시 후보자가 야당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보편적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복지포퓰리즘은 여야 구분도 없는 '퍼주기 경쟁’으로 치닫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복지포퓰리즘의 시발점은 무상급식 논란이 일었던 2010년 지자체장과 교육감 선거가 치러진 해로 볼 수 있다. 이때부터 계산한다면 우리나라 복지포퓰리즘의 역사는 이제 겨우 5년 정도 되는데, 벌써부터 재정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번에 '개혁과 합의’라는 명분으로 1,700조 원에 달하는 국민부담을 추가하고자 한 것이다.

 

최근 급속한 복지의 확대로 우리나라에서도 복지지출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복지예산은 2006년 56조 원에서 지난 해 100조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115조 원을 넘기면서 9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 반값등록금 등 '8대 복지사업’에만 한 해 90조 원 이상이 투입되고 있다. 앞으로 15년 후인 2030년에는 이 비용이 293조 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복지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반면 해마다 세수 부족은 계속되고 있다. 2012년 2조8,000억 원이던 세수부족액은 2013년 8조5,000억 원, 2014년 11조1,000억 원으로 매년 증가해 왔으며, 올해도 3조 원 이상의 세수 부족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파동 등이 증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것이 세수 부족을 메우려는 '꼼수’를 부리다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증세 없는 복지’ 약속은 그리스가 정치적 이유로 세금 인상을 연기하던 것과 다른가. 그 결과는 당연히 국가채무의 증가이다.

 

국회예산처가 최근 내놓은 '2014~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보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37%에서 2030년 58.0%로 증가하고, 35년 뒤인 2050년에는 121.3%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60년에는 그 비율이 168.9%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아래 그림 2참조).


<그림 2>

유념할 것은 위 <그림 2>에 표시된 국가채무는 정부가 집계하는 공식적인 국가채무만을 계산한 '협의의 국가채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확정채무만 포함된다. 협의의 국가채무는 GDP의 37%이다. 이러한 통계에 기반하여 '우리나라 재정은 아직 문제없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과연 실상이 그런 것인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 협의의 국가채무에 '공기업 부채를 포함한 국가채무’나 또 여기에 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까지를 포함한 '광의의 국가채무’를 본다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이미 위험수준에 와 있기 때문이다.(아래 그림 3 참조) '공기업 포함 국가채무’는 GDP 대비 60% 수준이며, '광의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140%를 넘고 있다. '공기업 포함 국가채무’만 하더라도 이미 유로존 가입 '경제수렴기준’을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

국회예산처의 보고서를 기준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이 보고서는 현재의 복지수준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작성된 보고서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복지포퓰리즘은 이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여야 구분 없이 본격적인 복지포퓰리즘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며, 그럴 경우 국가채무는 가파르게 급증하고 재정위기의 시기는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이번 국민연금 개악 사태는 우리나라 복지포퓰리즘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은근슬쩍 국민연금 개악으로 단번에 1,700조 원의 국민부담을 새로 부과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정치권이다. 이렇게 본다면 앞으로 15년 혹은 그 이전에라도 그리스의 사태가 곧 우리의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림 3>

 

그리스의 포퓰리즘 정치에서 흥미로운 것은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 당시 총리였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뿌려 놓은 포퓰리즘의 씨앗이 30년이 흐르면서 무서운 가시덤불이 되어 그 아들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아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정권을 물려받을 당시 그리스는 파산 일보직전이었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그리스 정치평론가 니코스 디모우) 이러한 사실은 포퓰리즘과 과도한 복지가 당대에는 달콤한 유혹이겠지만, 결국은 한 세대도 넘기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전가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버지가 만든 독약을 자식이 마시는 비극은 그리스 얘기가 아닌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kwonhc1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