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수타니파타

수타니파타 Ⅳ. 8송경품(八頌經品) 13. 큰 모음 경

승명 2018. 12. 19. 08:42

 

13. 큰 모음 경

901

일부 사람들이 관점을 견지하고, 주장하기를,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하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견책을 받기도 하고, 또는 찬양을 받기도 하네.

902

나는 말하기를, '논쟁의 두 가지 결과 모두 평정(平靜)을 가져오지 못하며, 보잘것없는 것이다'라고 하네. 이러한 정황을 보고, 논쟁에 참여하지 말고, 마땅히 논쟁이 없는 곳에 있으면서, 평정(平靜)을 찾아야 하네.

903

지혜로운 사람은, 근원(根源)이 같지 않은, 어떠한 관점에도 기울지 않고, 그는 집착하는 바가 없고, (철학적으로) 본 바, 들은 바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그가 이러한 관점들 어디에 집착하겠는가?

904

덕행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아(自我)[]를 제어하면 청정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하네. 그들은 계행을 엄격히 받들어 행하고,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우리들에게 이 세상에서 청정을 배우게 하라.'라고 하네. 이러한 사람들은 생존을 갈망하며, 자칭 대가(大家)라고 하네.

905

그는 이 세상에서 청정을 획득하기를 갈망하므로, 만일 그의 덕행(德行)·계행(戒行)이 실패하면, 그의 사업이 좌절되는 것이어서, 곧 바로 벌벌 떨면서 불안해하고, 거듭 탄식하며, 마치 집을 떠난 상인이, 상인 무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말하네.

906

그대들은 모든 덕행(德行)·계행(戒行)을 포기하고, 견책 받을 행위와 견책 받지 않을 행위를 모두 버리며, 청정(淸淨)과 불청정(不淸淨)을 모두 기구(企求)하지 말고, 연연해하지[얽매이지] 않으며, 집착하지 말고, 평정(平靜)한 마음으로 떠돌아 다니시오.

907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행에 의지하고, 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싫어하는 행위를 하게 하며, (철학적으로) 본 바, 들은 바, 생각한 바에 의지하고, 청정하기 위하여 슬피 통곡하며, 비명을 지르고, 되풀이되는 생존(生存)에 대한 욕망(慾望)을 버리지 못하네.

908

갈망이 있는 사람은, 억측하고 있는 사물을 위하여, 거듭 탄식하고, 벌벌 떨며 불안해 하네. 그러면서 생사를 벗어난 사람에게 와서 말하기를, '무엇이 그들을 벌벌 떨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거듭 탄식하게 합니까?'라고 하네.

909

일부 사람들이 도적(道的)으로 최고의 법이라고 칭하는 것을, 다른 일부 사람들은 그것은 저열한 법이라고 하네. 그러면 그들 중의 어느 종류의 설법이 정확하단 말인가? 모든 사람이 모두 자칭 대가(大家)인데.

910

사람들이 자기의 설법은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설법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하네. 이러한 갈라짐이 나타나면, 곧 바로 논쟁으로 이어지고, 모두 다 자기의 관점이 정확하다고 말하네.

911

만일 그것은 저열하다고, 다른 사람의 지책적(指責的) 설법을 받으면, 어느 개인의 설법도 고명(高明)하지 않게 되네. 왜냐하면 매 개인이 모두 자기의 설법은 견고하고, 다른 사람의 설법은 저열하다 공언하기 때문이네.

912

자기가 도적(道的)으로 추구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찬양은, 곧 바로 자기의 설법에 대한 어떠한 추앙인 것이네. 모든 그들의 설법이 이러 하네. 왜냐하면 그들의 청정은 각기 독특하기 때문이네.

913

바라문은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지 않고, 그는 여러 법을 고찰하지만, 받아들임은 허락하지 않네. 이로 인하여 그는 논쟁을 초월하고, 어떠한 관점도 숭상하지 않네.

914

나는 알고, 나는 보았는데, (그 결과)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사람은 관점에 의지하여 청정에 도달하네. 설사 그가 이미 (청정을) 보았다 하더라도, (다른 관점들은) 또 무엇이 가능했는가? 그가 이미 바른 길에서 벗어나서, 기타 경로를 통과하는 것으로 청정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데.

915

관찰자는 이름[]과 형상(形象)[]을 볼 것이고, 이름[]과 형상(形象)[]을 보고, 그것들을 알게 되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으로는 청정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에게 명색(名色)을 세세히 관찰하던, 대충대충 관찰하던 마음대로 관찰하게 하시오.

916

교조를 신봉하는 사람은 청정을 가져오지 못하는 데, 그는 억측적인 관점을 추앙하며, 그것에 의지하여 광명이 있게 되고, 청정이 있게 된다고 공언하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겨우 그것뿐 이네.

917

바라문은 시간(時間)과 숫자에 들어가지 않고, 관점을 뒤따르지 않고, 지식에 친근하지도 않네. 그는 세상의 각종 관점을 이해하고, 비록 다른 사람들은 (관점을) 받아들여도, 그는 보고도 못 본 체하네.

918

성자는 세상의 속박[얽매임]을 극복하고, 논쟁이 나타나면, 일방(一方)을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은 평정(平靜)하지 않아도, 그는 평정(平靜)하고, 다른 사람은 관점을 받아 들여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네.

919

그는 묵은 얽매임[속박]을 잘라 버리고, 새로운 얽매임[속박]을 배제하며, 욕심나는 바대로 마음이 따라가지 않고, 교조를 신봉하지 않네, 그는 관점을 채택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바가 없네.

920

어떠한 (철학적으로) 본 바, 들은 바, 생각한 바를 막론하고, 만사(萬事)·만물(萬物)에 대하여 초연(超然)하고, 자기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해탈을 획득하는, 이러한 성인은 갈망이 없으며, 시간(時間)에 다시 속하지 않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